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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네거트씨가 세상 뜬 지 1년 하고도 몇 달이 흘렀다. 이 즈음에, 그에 대한 추모의 글 하나를 발견했다. 원문을 찾아 보니 살롱닷컴. 그 내용은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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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네거트씨가 그런 사람이었음을 대강 눈치채고 있었다. 이것은 <제5도살장>의 서문 부분만 읽어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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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실제로 그 책의 제목이 <Slaughterhouse Five or the Children's Crusade: A Duty Dance With Death (제5도살장 혹은 아이들의 십자군 전쟁 : 죽음과 추는 억지춤)> 이 되었음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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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이라도 하는 듯한 비평가의 태도를 모욕적으로 받아들였던 딜런- 주드처럼 실제로 자신에 대한 영화와 책에 대해 반감을 표해왔다는 밥 딜런이 예외적으로 허락한 이 영화에서, 토드 헤인즈는 20세의 젊은 딜런 - 아서- 랭보의 입을 통해 아래와 같이 충고한다.
 
"Seven simple rules of going into hiding: one, never trust a cop in a raincoat. Two, beware of enthusiasm and of love, both are temporary and quick to sway. Three, if asked if you care about the world's problems, look deep into the eyes of he who asks, he will never ask you again. Four, never give your real name. Five, if ever asked to look at yourself, don't. Six, never do anything the person standing in front of you cannot understand. And finlly seven, never create anything, it will be misinterpreted, it will chain you and follow you for the rest of your life."

예전 작품인 벨벳 골드마인을 제작할 때 데이빗 보위로부터 자신의 곡을 영화 속에 삽입하지 말라고 배척당한 토드 헤인즈였기에, 이번엔 전철을 밟지 않으려 절치부심한 면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그는, 밥 딜런의 오랜 매니저로부터 밥 딜런에게 보낼 메시지에 절대 "저항 시인", "시대의 목소리" 따위의 표현을 넣지 말라는 조언을 받았다고 한다. 그렇게 만들어 보낸 영화 기획안은 낯간지러운 일체의 수식어를 배제하고 작성된 "딜런에 대한 8가지 영화적 추정". 사랑이나 열광 따위의 위험성에 상처받고 오해에 묶여 시달려온 은둔자의 취향, 그리고 이해받기를 열망해온 감춰진 절박함이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지?

p.s
그런데 케이트 블란쳇은 정말이지, 딜런보다 더 딜런스럽다.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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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공화국 - 10점
발레리 줄레조 지음, 길혜연 옮김/후마니타스

나는 아파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똑같은 구조의, 허공에 뜬 공간을 '내 안식처', 'Home' 이라 하기엔 삭막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을 살 때는 아파트만 둘러보고 골랐다. 취향의 문제를 떠나 '자산'의 문제라서이다. 한국에서 아파트가 아닌 주택을 구입하는 것은, 구입자가 노년층이거나, 위치가 재개발지역에 있거나, 부유층이라서 생활의 독립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이상 다소 비정상적인 행위로 평가를 받게 되며, 이러한 세간의 인식으로 인해 아파트가 아닌 집은 자산으로서 위험 혹은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상식쯤은 익히 알고 있는 터다.

[아파트 공화국]은 그 대열에 동참하고 있는 나조차도 괴상하다고 생각할 만큼 강력한 한국의 아파트 중심의 문화에 대해 프랑스인 지리학자가 의문을 품고 조사한 결과물이다. 한국, 특히 서울이 거쳐온 개발의 역사에 대해 일괄하고 주거의 사회문화적 측면에 대해 당연하지만 잊고 지내던 측면들을 환기시켜준다. 물론 외국인의 눈으로 본 한국, 이라는 접근법은 문화적 열등감의 발로일 때가 많지만, 내부자의 입으로 아무리 떠들어도 받아들일 것 같지 않은 분석을 서양인의 입으로 지적하면 귀를 기울일 것이라는 초라한 기대를 갖게 만든다. 그리고 양식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비교문화적인 예리함은 한 사회가 아집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 한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는, 절실한 기대 또한 갖게 한다.



흥미로운 대목들은 이런 것이다.

- 한국인은 도시가옥을 소모품으로 취급한다. '축적의 문화(culture de stock)' 를 발전시켜온 서구인들은 직선적 시간성에 뿌리를 두면서도 이미 지어진 가옥의 영속성에 더 집착하는 한편 (이래서 도심이 박물관화되는 경향이 보인다), 한국인 혹은 일본인들은 시간의 순환적 개념이 배어 있는 '유동의 문화(culture de flux)'에 기초하고 있는 듯 하다. 이런 의미에서 서울은 확실히 지리학에 저항하는 도시다.

- 프랑스에서는 아파트란 노동계급 혹은 하층민들의 주거공간을 마련해주기 위한 사회적 연대의 맥락에서 국민"임대"주택의 방법으로 주로 도입되었지만, 기본적으로 한국에서 주택은 개인의 문제로만 인식되었기 때문에 아파트 역시 늘 "매매"의 대상이었고 그것을 구매할 수 있는 재정적 능력을 갖춘 계층에게만 제공되었다. 즉 부의 재분배라는 유럽식 맥락에서보다는 부의 증식, 성장, 팽창이라는 맥락에 놓여 있었으며, 거시적으로는 아파트 수라는 양적 성장에 집착하며 개인의 행복이 아닌 '사회의 행복'(그 실체도 모호한!)에 몰입하는 한국인 특유의 가치 태도가 배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한국은 이런 유사집단주의적 경향에도 불구하고 개인주의의 나라인 프랑스보다도 연대에 대한 정책적, 사회적 의식이 취약하다 - 적어도 주택문제에 있어서는 확실하게.

- 프랑스 혹은 대다수의 유럽에서 현재 아파트는 도시화에서 소회된 외곽의 주거 지역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으나, 한국의 아파트는 적극적인 도시화에 대한 동화의 결과물이다.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한국(서울)의 주택정책은 심지어 소형주택을 희생시켜 대형주택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점차 하위 계층을 주변 지역으로 내밀고 도심지역을 상층 계급이 차지하는 현상을 낳았다 (Gentrification)

- 7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멈추지 않고 있는 대규모 아파트 건설 공사들은 권위주의 정부 주도의 계획경제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시도속에 자주 활용되었다. 아파트를 저렴하게 분양받고 부의 증가를 경험하며 중간계급으로 편입한 이들은 체제의 수혜자이자 동조자가 되었다.

and so 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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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핑 포인트 - 10점
말콤 글래드웰 지음, 임옥희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네트워크 이론 따라가다 뒤늦게 잡은 책. 기존에 훑은 네트워크 관련 책들이 단지 이론적이었다면, 이 책은 네트워크를 실제로 확장시킬 수도 있겠다는 실행의 자신감을 준다는 미덕이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젝트, 상품 등을 어떻게 유행과 트렌드로 만들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통찰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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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핑포인트 Tipping Point . 미국 내 특정 지역에 이주해 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숫자가 20% 수준에 이르면 남아있던 모든 백인들이 한순간에 떠나버리는 한계점에 도착하는, 1970년대 미국 북동부 도시에서 벌어진 백인들의 교외로의 탈주 현상을 기술하기 위해 주로 사용되던 용어. 이 책에서는 생물학적, 사회학적, 혹은 마케팅 측면에서 급격하고 급진적인 변화, 즉 전염 혹은 유행이 발생하는 지점을 일컫는 단어로 쓰였다. 저자는 소수의 법칙, 고착성 요소, 상황의 힘, 이 세 가지가 티핑포인트에 도달하는 키워드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가장 흥미로운 대목인 소수의 법칙 위주로 요약한다.

1. 소수의 법칙

네트워크에 관한 이론들에서 등장한 여러 용어들과 자주 마주친다. 이 책에 따르면 대중을 이끌어가는 것은 소수, 20%, 선도자들이며, 다음과 같은 유형으로 분류된다.

(1) 커넥터 Connector : 밀그램의 여섯 단계의 법칙에서 마지막 단계는 "커넥터" 들이 장악한다. 기실 모두가 상이한 단계를 통해 종착점에 도착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회적 써클로 연결시키는 특별한 소수자, 커넥터를 통해 도착했던 것. 제한적이고 좁은 우리의 인적 네트워크를 확장시켜주는 도어맨 같은 이들은, 비슷한 연령/직업군 내에서 네트워크 테스트를 실시했을 때 평균치를 대폭 상회하는 점수를 나타낸다. 그리고 이들은, "강한 힘을 가진 약한 관계"를 가장 많이 보유한 파워맨들로, 친하지만 무심한 사회적 관계를 즐기는 특징을 보인다(커넥터가 되기 위한 7가지 습관 p.58 의 내용도 주목할 만 하다.)
 
(2)  메이븐 Maven : 지식을 축적한 자라는 의미의 Yiddish어. 최근 경제학에서도 주목받는 그룹으로, 매우 적극적인 정보수집가로 최선의 정보를 골라내어 타인들에게 노력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단순한 전문가들이 단지 사물에만 관심을 보이는 반면, 메이븐은 좀 더 사회적으로 동기화된 존재들로 자신이 가진 정보를 통해 사람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정서적 요구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은 가장 객관적이고 냉철한 정보를 무상으로 공급함으로써 사람들의 신뢰를 얻음으로써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도달하는 경향이 있다.

(3) 세일즈맨 : 사회적인 전염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좀 더 공세적으로, 망설이는 사람들을 전염속으로 뛰어들도록 설득하는 어느 단계가 존재해야 한다. 이들은 화술의 달인만이 아니며 오히려 설득은 비언어적이며 무의식적인 작은 차이로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잘 활용하는 인물들이다.


2. 고착성 요소

고착성이란 정보의 홍수속에서 극적으로 상대방의 머릿속에 메시지가 고정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보를 제시하거나 구조화할 때 '작지만 고착성이 강한 변화'만 주어도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Winston Tastes Good like a Cigarette Should" 에서 드러난 비문법적인 Like의 힘. 그러니 제발 기획자들이여, 민감하라, 섬세하라, 그리고 영악하라 - 무식하게 다 들어엎지 않아도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책에서 설명하는 세서미스트리트와 블루스클루스의 예는 결국, 고착성 요소를 찾기 위해 그들이 어떤 과정으로 노력했으며, 블루스클루스의 성공은 더 고착적인 어떤 점을 활용했기 때문이라는 다소 장황한 설명이다.


3. 상황의 힘

전염이 꼭 사람을 통해 확산되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이거나 물리적인 어떤 힘들에 의해 벌어질 때도 많다. 바로 상황의 힘이다. 인간 행동은 생각보다 훨씬 더 암시에 걸리기 쉽고 상황에 영향을 받는다. 이때 상황은 구조적이며 지속적인 환경 요인이라기보다 우발적이고 일시적인 변수에 가깝다. 이런 차원에서, 모든 진리란 것은 상황 혹은 맥락구속적인 범위 내에서만 진리이다. 특히 사람에 관한 판단에서, 어떤 행동을 고정된 속성 때문으로 설명하려 하는 귀인 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가 자주 발생하는데 이는 단지 인식의 편리함을 위해서일 뿐 실제로는 상황과 맥락이라는 변수를 반드시 살펴야 한다.  
 
이런 상황의 힘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범죄의 전염에 관한 연구에서 등장하는 "깨진 창문 이론"의 경우다. 이 이론은 낙서, 무질서, 공격적인 구걸과 같은 도시의 비교적 사소한 무질서의 문제들이 보다 심각한 범죄를 초래한다고 설명한다. 1980년대 정점에 달했던 뉴욕시의 범죄율이 급격하게 감소한 것은, 바로 이런 사소한 무질서들을 바로잡았기 때문이라는 것. 이쯤 되면, 상황의 힘에 대해 인지하는 것은 우리가 사소한 환경을 바꾸어봄으로써 거대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메시지가 된다.


에필로그.
유행하는 어떤 표현을 자신이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후배가 있었다. 아니 니가 어떻게 그런 유행을 만들어낸다는거야? 유행이 발생한 과정을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하라는 대목에서 후배는 소심해졌고 우리는 그를 실컷 놀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 책 보고나니, 어쩌면 티핑포인트에서 설명하는 과정대로 우연찮은 현상이 벌어졌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이 책에 대한 리뷰는 그간 허풍선이 작위를 수여받았던 그 후배에게 헌사한다. 공부 잘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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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내 품에는
                           얼마나 많은 빛들이 있었던가
                           바람이 풀밭을 스치면
                           풀밭의 그 수런댐으로 나는
                           이 세계 바깥까지
                           얼마나 길게 투명한 개울을
                           만들 수 있었던가
                           물 위에 뜨던 그 많은 빛들,
                           좇아서
                           긴 시간을 견디어 여기까지 내려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리고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그때는 내 품에 또한
                           얼마나 많은 그리움의 모서리들이
                           옹색하게 살았던가
                           지금은 앵두가 익을 무렵
                           그래 그 옆에서 숨죽일 무렵


                                                    - 장석남  <옛 노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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