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theq



자칭 변방 블로거인 저이지만, 이곳 모퉁이까지 불어오는 답답한 공기를 참기가 힘듭니다. 여러 블로거들이 같이 준비하는 이 시국선언에 그래서 저도 참여합니다. 이미 주어져 있었던 민주주의라는 선물, 그것을 내동댕이치듯 방치했던 시간들을 후회합니다. 거꾸로 가는 시계를 다시 돌려놓는 여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관심있는 분은 가장 하단 링크나 트랙백 따라가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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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 22주년을 맞는 오늘 우리 블로거들은 다시 민주주의와 사회적·경제적 정의를 고민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독립성이 크게 훼손되고, 인터넷에 대한 통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사전적·포괄적으로 봉쇄하여 국민의 알 권리와 말할 권리를 모두 틀어막으려 하고 있다. 경제적 양극화가 날로 심화되고 있고 노동자와 서민, 사회적 약자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우리 블로거들은 다음을 요구한다.

1. 정부는 언론 장악 시도를 중단하고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
2. 정부는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대의절차의 왜곡을 보완하는 기본권인 집회·결사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해야 한다.
3. 정부는 독단적인 국정 운영을 중단하고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의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기울여야 한다.

-  discotheq


(선언문 원문 - 이정환닷컴 http://www.leejeonghwan.com/media/archives/001516.html)
(시국선언문 진행 -도아의 세상사는 이야기 : http://offree.net/entry/Blogger-Decla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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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디스코테크


1987년 유월 즈음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나는 뒤늦게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국민학교 1학년 때 잠시 배우다가  그만 두고, 6년 만에 내 의지로 다시 시작한 피아노였다. 학원은 내 단골 오락실 건물 4층에 있었는데, 전자오락기 소음에 갇혀 있다 오락실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청아하게 귀를 닦아주는 듯한 피아노 소리가 좋아서 그 전부터 종종 올려다 보곤 했던 곳이었다. 

학원의 원장 선생님은 좀 까다로운 듯한 인상이었지만, 쓸데 없는 말이 거의 없는 분이었다. 흠이라면 수업할 때 피아노 음을 따라 흥얼거리는 목소리가 좀 우스꽝스러웠다는 건데, 그조차도 싫지는 않았던 걸로 봐선 내가 그 선생님을 꽤 좋아했던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원체 남에게 관심이 별로 없었던 시기라 좋아하던 선생님에 대해서도 남겨 놓은 기억이 죄다 잡동사니 뿐이다. 그 흥얼거림과 커다란 뿔테 안경, 툭 튀어나온 앞니와 다빈이라는 서너살 짜리 남자아기가 있었다는 것 정도. 그러고 보니 바이엘 떼던 날 선생님이 기념이라고 주셨던 보라색 에나멜 가방도 참 예뻤었는데.

학원 가는 길에 꼭 건너야 하는 충남대학교에서 대전 시내로 이어지는 큰 도로는 그 즈음에 시위대로 막히는 일이 잦았다. 넓은 도로를 꽉 메우고 구호를 외치던 대학생들을 볼 때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젓곤 했다. 학원 레슨 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시위대와 마주치지 않는 것이 중요했으니, 그들은 비호감의 대상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번은 공교롭게 시위대 중에 섞여 있는 교생 선생님들을 보았다. 그날은 교생들이 집단으로 출근을 안한 날이었다. 1교시 사회 선생님은 그 분들이 중요한 볼 일이 있어서 못왔다고 두둔하며 얘기 했었지만, 저기 거리에 서 있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의아했다. 다만 예전처럼, 시위대를 보자마자 눈을 찡그리는 일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당시에 연습하던 곡은 소나타 중에서 나중에 영창 피아노 광고에 씌여 유명해진 곡, 그것이었다. 그 날은 다음 소절 연습을 시작하면서 선생님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되었다. 우리 학원도 피아노 발표회를 할 거고, 나는 이 곡으로 참가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다짜고짜 이것부터 물었다.
“그럼 드레스도 입어야 되나요?”  
"...그렇지."
난 좀 울컥해지고 말았다. 유치하게 드레스라니. 그런데 생각해보니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학원에 중학생은 나 하나고 나머지는 다 어린 애들인데 그 조무래기들과 함께 연주회를 한다는 것도 체면상 내키지 않았고, 모짜르트도 아니고 소나타 같이 쉬운 곡으로 발표회 한다는 것도 창피했다. 

발표회 문제를 골똘히 생각하며 걷다 보니 주차된 트럭과 건물 사이의 좁은 통로로 들어서게 되었다. 넓은 길 놔두고 왜 이리로 왔을까 하던 차에 맞은 편에서 기분 나쁜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고개를 들어보니 지저분한 옷차림의 아저씨가 저쪽 출구를 막고 서 있었다. “너 가슴 나왔어? “ 언뜻 접수가 안되던 말. 한동안 눈만 꿈뻑거리던 내가 무언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고 반대쪽으로 돌아섰을 때 오락실 앞에 아는 아이들 무리가 보였다. “야! 너 가슴 나왔어, 안나왔어!” 나는 귀를 털어내며 아이들 쪽으로 뛰어갔다.

한참 뒤 집에 돌아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 상황을 피할 방법은 발표회 전에 학원을 그만 두는 것 밖엔 없었다. 이번 달까지만 레슨 받고 그만 두면 발표회 준비에 얽히지는 않겠구나. 달력을 펴놓고 보니 스케줄이 적당하게 맞아서 다행이었다. 마침 체르니 30번도 거의 다 떼어 가겠다 뭐... 여유가 생긴 나는 그 뒤로 학원다니는 흥을 잃고 말았다. 나만 보면 세발 자전거 뒤를 밀어달라고 달려들던 다빈이도 성가셔졌다. 다만 선생님이 레슨 때 뭐라도 물을까봐  긴장해서 어색하게 굴기는 했던 것 같다. 아마 그 분이 조금 섬세했다면 뭔가 수상하다는 걸 깨달았을 텐데, 다행히도 그랬던 것 같진 않다.

마지막 레슨이 있었던 날, 학원에 가기 전에 나는 선생님에게 그만둔다는 통보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미안한 기분이 들어서 어찌 말해야 할지 좀 막막했다. 그 날은 레슨을 어떻게 받았는지는 거의 기억이 안난다. 선생님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또렷한데. 내가 연습하는 걸 지켜본 후 다른 아이들 방에 더 들렀다가, 학원 안쪽에 있던 살림집 부엌으로 들어가시는 것 같았다. 그릇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연습을 하는 둥 마는 둥, 선생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나는, 혼자 계실 때 얘기를 해야겠다 싶어 마른 침을 삼키며 부엌으로 조심스레 다가갔다.

커튼 뒤에서 선생님은 뜻밖에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여자 혼자 커다란 맥주병을 놓고 있으니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그렇게 얼어 있는 나를 보고 선생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은 기분이 좋아서 말이야.”
뭐가 기분 좋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다음 말을 기다리는 나에게 선생님은 오늘 대통령이 무슨 발표를 했는데 참 잘 된 거고, 아마 우리 나라는 앞으로 잘 될거라고 했다. 나는 그 흥얼거리는 듯한 설명을 건성으로 들었다. 그냥, 대학생들과 선생님이 한편이었구나, 선생님이 좋게 얘기하는 걸보니 확실히 나쁜 일만은 아니었나보다 아주 잠깐 생각했다. 머릿 속엔 학원 그만 둔다고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파도를 치고 있었다. 하지만, 나라가 잘 될 중요한 일이 있었다는데, 어쩐지 내 사소한 얘기를 꺼내기가 좀 쑥쓰러워서 안녕히 계시라고 평소처럼 인사하고 도망치듯 학원을 빠져 나왔다.
......

가만 생각해보면 늘 나는 내 문제에 골똘한 상태로 중요한 시기들을 지나왔다. 광장의 한가운데, 거기 서 있었던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어느 방식을 통해서든 누구나 그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는 것은 내 경험으로 보아도 알 수가 있다. 작년, 올해, 두번의 유월도 무척 바쁘다. 우연찮게 또 다시 어떤 고비가 내 앞에 놓여 있는데 피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에 묶어 둬야 한다. 이 시절을 난 또 이런 개인사에 빠져 보내는구나. 무슨 징크스인가 싶다. 낮에는 고민에 시달리고 밤에는 거리로 인터넷으로 횡보해야 하는 생활에 피로감은 쌓여가지만 어떻게든, 이 시기를 또 돌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외없이 이 시절의 결이 나에게 남게 될 것이다. 그 끝에서쯤 나도 기분 좋게 맥주 마실 일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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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디스코테크


<마더>를 드디어 보았다. 많이들 언급하듯이 김혜자라는 배우가 가진 히스테릭한 표정을 마음껏 감상해도 되니 좋았다. 김혜자는 이 영화에서도 여전히 "어머니"지만 아들이 누명을 쓰는 사건이 벌어지기 전부터 성적인 긴장감, 괴상한 집착에 둘러싸여 있는, 어두침침하고 광기 서려있는 이상한 엄마다. 실제로 심각한 골초에 김치도 못 담근다는(간장 게장 팔던 동료 배우가 폭로한 "김혜자가 국민어머니가 될 수 없는 결정적 이유") 분이 전원일기에 오래 출연했다는 이유로 <대한민국의 어머니상>이라는 프레임에 수 십년 째 갖혀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이긴 했지. 

언급이 많이 안되는 재밌는 장면이 있다. 임신과 흡연이라는 조합, 즉 우리 사회의 가장 강력한 터부 중 하나를 깨는 씬인데 여고생의 장례식에서 검은 상복의 임신부가 담배를 입에 '꼬나 문' 채 황야의 무법자처럼 걸어나와 혜자 엄마에게 싸다구를 날리는 것이다(장면 자체는 재밌지만, 영화 전체적으로 어떤 쓸모가 있는지 모호하다 생각했는데, 이에 대한 약간의 언급이 감독과 이동진 기자와의 인터뷰에 나온다. 링크는 여기.) 이게 끝도 아니다. 더 뒷 부분에서는 짖궂게도 김혜자의 입에도 담배를 물린다. 열받은 엄마가 담배를 빨아들이고 내뱉는다. 역시, 어설픈 입담배가 아니심! 을 살짝 엿볼 정도.

이 괴상한 엄마에게도 내 아들 대신 누명을 쓴 더 심각한 바보 녀석을 동정할 정도의 양심은 있다. 너는 엄마도 없어? - 동공커짐 - 흐느낌. 하지만 결국 아들과 자신의 죄를 묻어버리고, 버스 창으로 쏟아지는 석양 빛에 춤추듯 너울대던 그림자처럼 죄의식에 묶이지 않고 살아갈 것이다. 엄마의 이 결심을 보여주는 영화의 마지막 씬은 정말 압도적으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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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4편도 봤다.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하지만 한때 - 초딩, 중딩때- 내가 세계에서 제일 멋지다고 생각했던 카일 리스(마이클 빈 에 대한 이야기지만)의 덜 자란 모습을 보는 일이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이건 뭐 애송이잖아! 그리고 존 코너가 알고보니 배트맨이라니 너무한다. 블럭버스터 세계의 상도덕에 어긋나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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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내내 이것저것 음식을 많이 해먹으면서 재밌었다. 음식 만들 시간적, 심리적 여유, 모두 다 충분한 주말이 또 언제쯤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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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블로그에 올린 글 수정을 굉장히 많이 한다. 읽을 수록 틀린 부분이 또 발견되고, 전체적으로 마음에 안들기 때문이다. 망가진 이 필력을 어찌 복원하나. 티스토리의 어쩐지 뻑뻑한 위지위그스타일의 글쓰기 편집 창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핑계를 대보지만... 아, 좀 잘 좀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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